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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곳에 이사/in Normal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는 뭘까

by rltwnf 2013.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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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는 뭘까 (女)


김희성, 이준우|201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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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10개월째. 왜 헤어져야 하는지, 아니 헤어지고 싶은지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다만 여기서 더 이 관계를 유지해서는 안될 것만 같다. 그렇게 혼자서 이별했다. 어느 날, 예고 없이!
여느 때와 똑같은 날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많이 웃었고, 그도 그런 나를 보며 웃었다. 햇살이 비치는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다 그가 내게 “예쁘다”고 말했다. 그가 나를 ‘예쁘다’고 생각해 줘서 나는 또 웃었다. 그도 따라 웃었다. 그는 슬며시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 그만 만나자”


그는 맥락 없이 내게 이별을 고했다. 최근 연락이 뜸했다거나 크게 다툰 건 아니다. 이별을 앞두고 흔히 나타나는 조짐이 우리에겐 전혀 없었다. 대화의 맥락상 ‘사랑해’가 어울리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는 이별이라는 단어로 그 자리를 대체했다.


방금 전까지 내 손을 잡고 있던 그가 갑자기 헤어지자는 말을 할 수 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치 몰래 카메라라도 찍는 듯 갑작스럽게 던진 그의 말에 나는 어떠한 답변도 찾지 못했다.


그는 얼마나 오래 전부터 이별을 준비한 걸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 언제부턴가 나와 만나면서 그가 수없이 이별을 생각했었다는 게 참을 수 없이 속상했다. 그리고 내가 그걸 몰랐다는 게 너무 쪽팔렸다. 그것도 모르고 그를 바라보며 천진하게 웃었던 내가 너무 싫었다. 지금 여기서 증발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는 자신을 향해 웃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전에도 몇 번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을 바라보는 내 눈빛 때문에,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해 미루고 미뤄 결국 오늘까지 온 걸까?


생각해 보니 8개월 동안 사귀면서 우린 크게 싸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렸을 때의 연애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과장 좀 보태서 문자 메시지의 마침표 하나로도 대차게 싸웠던 시절이었다. 사소한 것 하나 때문에 싸우고, 눈물을 흘리고, 며칠 동안 서로에게 연락을 안 하기도 하고, 속상해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돌이켜 보니 치열하게 사랑하고 치열하게 싸웠다. 연애라는 사업에 우린 그다지도 열심이었다.


그와 나는 싸운 적이 없었다. 20대 초반이었다면 분명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법한 문제들이 그냥 서로를 이해하는 걸로 넘어갔다. “우린 참 사이가 좋다”는 말을 서로에게 많이 했다. 우리는 그걸 성숙한 어른들의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는 걸 은근한 자부심으로 여겼다. 잘 맞는 커플이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에 와 돌이켜보니 우리가 다투지 않았다는 건 쿵짝이 잘 맞는 커플이라서가 아니라 서로를 덜 사랑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일에 화를 내고 싸우고 화해하기가 번거로워 그냥 적당히 이해하는 척 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 정도의 감정 소모를 하기에도 피곤할 정도로 우린 ‘적당한’ 연애를 해왔던 것 같다. 좋게 좋게 하는 연애. 그다지 격정적이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약간의 설렘과 좀 더 만나보면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우리의 관계를 8개월 동안이나 지속시켜 준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이별을 합리화 시킨다.


“그래. 나도 그만 만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


어쩌면 그가 헤어지자고 한 이유는 내가 생각한 그것과 다를지도 모른다. 사실은 정말 궁금해서“왜?”라고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나만 초라해지는 느낌이니까. 그리고 울 것 같으니까. 그냥 그렇게 합리화 시키는 편이 내가 나를 위로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렇게라도 합리화 하지 않으면 정말 슬플 것 같았다. 그리고 한 여자에게 1분의 간격을 두고 ‘예쁘다’는 말과 ‘헤어지자’는 말을 동시에 한 사람에게 그런 인과관계를 묻는다는 게 부질없이 느껴졌다. 정말 궁금하지만 그냥 묻지 않기로 한다.


그가 마지막까지도 다정한 모습으로 내게 이별을 고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좋은 남자가 되고 싶다는 착한 남자 콤플렉스 때문이었을 것 같다. 그리고 분명 지금 자기 자신을 꽤 좋은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잘 지내”


“잘 지내”


그렇게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표정의 흐트러짐 하나 없이 나를 향해 잘 지내라는 말을 하고, 미소를 짓는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우린 돌아서서 각자의 갈 길을 간다. 물론 그가 보기엔 나도 안색 하나 안 변한 표정일거다. 상처 따위 하나도 받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할 거다. 그가 덤덤하게 이별을 말했던 것처럼 나 또한 무신경하게 이별을 받아들였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사이가 가장 멀어지는 순간을 나는 또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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